일본 전 총리 진도 찾는다…왜군 위령제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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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에 싹튼 생명 평화운동, 9월 23일 한일 국제학술회의 개최
명량대첩 당시 왜군 시신 수습한 고군면 ‘왜덕산’에서 위령제 열려
진도문화원이 역사 사료발굴 사업의 목적으로 왜덕산(倭德山)과 교토 이비총(耳鼻塚)에 관한 한일 국제학술회의와 왜덕산 위령제를 오는 9월 23일(금)부터 24일(토)까지 진도군청 대회의실과 고군면 왜덕산 현장에서 개최한다. 이 행사에는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가 참여해 국내외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597년 9월 16일 울돌목에서 이순신 장군의 조선 수군은 13척으로 3백여 척의 왜군 공격을 막아 낸 명량대첩의 승전보를 조정에 알렸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전투에 참여해 대승을 거둔 진도 주민들은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 해안으로 밀려드는 일본 수군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이었다.
조선 수군은 명량대첩으로 전사자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대패한 일본의 수군 병사들은 표류한 시신으로 진도 동부해안 일대에 떠돌아다니다가 진도군 고군면 내동, 마산, 오산, 지수, 지막, 하율, 황조 등 동부해안 개펄과 만으로 밀려들어 그 시신들을 수습해 고향을 바라볼 수 있는 양지바른 바닷가 야산에 묻어 주었다는 ‘왜덕산(倭德山)’이 2002년 발굴되고 조사 연구 과정을 거쳐 세상에 알려졌다.
왜덕산 일본 수군 묘역.
반면 일본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으로 조선인의 목 대신에 조선인 남녀의 코나 귀를 베어 전리품으로 가져가 묻었다는 귀(코) 무덤(이비총, 耳鼻塚)이 교토를 비롯해 현재까지 다섯 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쟁으로 조성된 두 나라의 무덤은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 진도의 왜덕산에 일본 수군 100 여기, 교토의 귀(코) 무덤에 조선인 12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쟁으로 결이 다른 무덤이 조성되고 교토와 진도에는 이 무덤으로 인해 두 개의 순수 민간단체가 생겨났다. 한국 진도에는 ‘왜덕산 보존회’가, 일본 교토에는 ‘교토평화회’가 결성돼 그동안 민간 교류를 통해 반전·생명·평화를 알리고 위령제를 개최하는 등 상호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이번 행사는 진도문화원, 왜덕산 보존회, 교토평화회가 공동으로 참여해 생명 평화운동의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학술회의와 위령제를 진행한다.
이 행사에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가 참여해 국내외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토야마 일본 제93대 내각 총리대신은 지난해 11월 8일 부인과 함께 교토 이총을 찾아 참배하고 고개를 숙인 바 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교토 이총을 참배한 자리에서 고개 숙이고 사과의 뜻을 전하며 “가해자는 가해 역사를 쉽게 잊지만, 피해자는 그렇지 않다”며 “피해자가 ‘이제 됐다’라고 할 때까지 일본은 지속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밝혀 이번 진도 방문에서 어떤 마음을 전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하토야마 전 총리를 비롯해 아마기 나오토(天木直人) 전 레바논 일본대사 겸 현 교토평화회 대표 등 9명이 참여해 학술회의와 위령제에 참가하고, 진도 왜덕산과 교토이총의 역사 문화자료를 통해 교토평화회와 진도 왜덕산보존회는 반전 생명 평화를 위한 지속 행사를 진행하기 위한 공동 협약(MOU)을 체결한다.
9월 23일 진행되는 국제 학술회의에는 일본 측 이토 아비토 교수, 아마기 나오토 교토평화회 대표, 그리고 한국에서는 일본 귀무덤을 발굴해 세상에 알린 김문길 부산 외대 명예교수, 이해준 공주대 명예교수, 전경수 서울대 명예교수, 박주언 진도문화원장이 1~2부 발표자로 정유재란과 왜덕산 교토 귀무덤에 대한 발표를 진행한다. 이어 6명의 토론자가 참여해 종합토론회를 하게 되고 MOU 체결로 첫날 행사가 이어진다.
둘째 날에는 고군면 내산리 왜덕산 현장에서 헌향, 헌다례, 왜덕산 경과보고에 이어 양국 인사들의 추모와 기념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행사를 주관하는 진도문화원 박주언 원장은 “왜덕산 지명은 2002년 내동리 고 이기수 노인의 증언처럼 명량해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해전 당시 전사한 일본 수군 시신이 왜덕산 앞 오산만 안으로 밀려온 것을 진도의 동북부 주민들이 수습해 안장해준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밝혔다.
박 원장은 “그동안 진도 여러 성씨의 족보에도 정유재란 당시 명량대첩이 끝난 이후 조성한 조상들의 묘지 위치에 ‘왜덕산(倭德山)’이라는 지명이 나오고 후손들이 알려준 묘소 위치가 일치해 왜덕산에 대한 이기수 씨의 증언에 확신을 더하게 한다”며 “명량대첩으로 전사한 일본 수군의 시신을 왜덕산 뿐만 아니라 인근 해안인 둔전, 마산, 황조 등지에도 유사한 공동묘지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놓고 연구 조사를 이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허산기자 mijindo@naver.com